빠빠야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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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빠야 예찬
  • 양승윤(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4.05.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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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채 겸용 과일로 빠빠야(papaya)라는 게 있다. 열대와 아열대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는 이 과일은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하와이에 지천으로 널려 있고, 인도네시아를 위시한 동남아 어느 나라에나 덥고 비가 많이 오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흔하게 눈에 띈다. 작물 개량에 특별하게 힘쓰는 나라, 대만에서 개량한 품종이 동남아 여러 나라에 보급되어 열매가 더 크고 맛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빠빠야는 암수 나무로 구분된다. 암 빠빠야는 하얀색으로 작은 꽃을 피우고 길쭉한 호박 모양의 열매가 맺힌다. 잎자루가 떨어진 자리에서 몸통에 붙은 채 자라기 때문에 몸통 길이가 50센티나 되고 무게도 10킬로에 육박하는 초대형 빠빠야도 매달린다. 수 빠빠야는 열매 대신 잎과 꽃이 야채용이나 약용으로 널리 이용된다. 
   빠빠야의 다년생 식물로 생존 기간이 5년에서 길게는 20년이다. 수박씨 비슷한 까만 씨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난 후 7-8개월 되면 벌써 열매를 맺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기운이 쇠할 때까지 쉬지 않고 연녹색 잎새를 돋우고 하얀 꽃을 피워서 끊임없이 진녹색 열매를 생산해 낸다. 다 익은 빠빠야 표피는 옅은 황토 색깔이 된다. 과일의 색깔과 과육의 질감과 맛으로는 수박과 단호박의 중간쯤 된다. 잘 익은 놈으로 골라서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썰고, 왕 눈깔사탕 크기의 진녹색 라임 귤을 갈라서 새콤한 액즙을 뿌려 먹으면 맛도 꽤 좋다. 중간 크기 한 접시면 허기와 갈증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한창 더운 한낮에 빠빠야가 많이 팔린다.
   상하(常夏)의 나라 사람들이 땀을 뻘뻘 흘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적도 근방의 날씨가 덥기는 더워서 찬 음료를 많이 찾는다. 인도네시아에는 우리의 화채에 해당하는 에스(얼음) 부아(과일)라는 것이 있다. 제빙기가 쏟아 내는 조각 얼음에 이보다 작은 가정용 깍두기 크기로 썬 붉은 벽돌색 빠빠야 과육이나 흰색 파인애플 조각을 넣은 후 야자 과육을 긁어 넣고, 설탕을 녹여 만든 시럽으로 단맛을 조절한 것이다. 에스 부아의 특징이라면 물이나 우유, 기타 청량음료를 섞지 않는 것이다. 더운 날씨 탓에 금방 녹아내리는 얼음을 달그락거리며 긴 티스푼으로 과일을 먼저 건져 먹고, 마지막으로 찬 얼음물에 녹아 있는 단맛과 과일 맛을 함께 마시는 것이다. 값싸고 빛깔 좋고 맛있는 빠빠야가 에스 부아의 주재료다.
   빠빠야는 과일 용도 이외에 야채나 약재로도 널리 쓰인다. 아직 덜 익은 과육은 물론이고, 잎은 야채로, 꽃은 훌륭한 생약재가 된다. 가장 흔한 먹거리 형태가 ‘오셍오셍’이다. 과일용으로는 아직 이른 빠빠야의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내서 무채 형태로 썬 다음, 풋고추와 양파를 듬뿍 썰어 넣고 마늘과 파 등으로 구색을 갖추어 식용유로 볶아 낸 것이다. 잎도 삶아서 양념을 하면 맛있는 반찬이 된다. 옛날 정월 대보름날 우리가 먹던 말린 아주까리 잎을 삶아 기름으로 볶아 낸 맛이다. 여린 잎과 꽃으로 만든 녹즙은 민간요법의 약으로 쓰인다. 말라리아와 뎅기열에 특효가 있으며, 복통이나 두통에도 효험이 있다. 임산부들에게는 수유(授乳) 기능을 증대할 목적으로 빠빠야 녹즙을 많이 권한다. 빠빠야의 소화 효능은 탁월하다. 그래서 고기 요리에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빠빠야를 갈아 넣는다. 동남아에서 면요리에 얹어 먹는 매운 소스도 붉은 고추와 토마토와 빠빠야를 함께 갈아서 만든 것이다. 이렇게 용도가 다양한 빠빠야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열대과일이다.  
   빠빠야는 일생 동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소임에 헌신적이다. 다 자란 빠빠야의 밑동 직경이 20cm 가까이 되고 키가 5-6m나 되는 우람한 것들도 있다. 그러나 5년쯤 지나서 노화현상이 나타나면 잎과 과일이 서서히 작아진다. 우기 때면 그토록 당당했던 빠빠야가 두세 달 만에 썩어서 주저앉는다. 물을 뿜어내던 소방 호스가 수도꼭지를 잠그면 즉시 찌그러지듯이 그렇게 사라진다. 건기 때도 자신의 쇠진한 모습을 5-6개월 넘기지 않고 거두어 간다. 이때 빠빠야 밑동의 단면을 살펴본다면, 골수로 꽉 차 있었던 심지 부분이 뻥 뚫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빠빠야는 사력(死力)을 다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인간들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성스러운 소임을 다 한 후, 자신이 섰던 자리까지 얼른 이웃에게 내준다. 오래 기다렸던 국내산 빠빠야도 곧 선보일 것 같다. 전남 해남군의 한 과수농가에서는 2년 전부터 3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에 250주를 심어 한 주당 25개 가량의 빠빠야를 생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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